봄과 여름의 사이의 밤이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얻은 유우키 마코토는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약을 걸어두었던 신작 게임을 받으러 갔다. 한 손에 달랑 들어오는 쇼핑백을 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트릭스타의 숙소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는 것이 옳다. 번화가의 중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의 발걸음이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궁금했지만 손에 든 신작 게임이 더 중요했던 유우키 마코토에게 몇몇 목소리가 스쳤다.
“저 남자 엄청 서럽게 운다.”
“여자친구한테 차인거 아냐?”
“그런데 약간 세나 이즈미 닮은 것 같지 않아?”
세나 이즈미. 그 이름에 유우키 마코토는 문제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아케호시 스바루가 미역머리라고 불렀던 그 푹신푹신한 회색 머리가 보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벅벅 닦아내는 손등의 사이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아 정말. 한숨이 푸욱 새어나왔다. 유우키 마코토는 성큼 걸어 고개 숙인 채 우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이즈미씨.”
“...유우군?”
세나 이즈미가 고개를 들자 눈물샘에 남아있던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사람 대체 어쩌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걸까. 썩 좋지는 않은 근 3년만의 재회였다.
***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세나 이즈미는 자신의 이미지에는 해가 될 일은 하지 않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번화가 한복판에서 어쩔줄 모르고 엉엉 우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유우키 마코토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세나 이즈미를 데리고 간 곳은 인근의 24시 카페였다. 겨우 울음을 그친 그를 카페의 구석 창가자리에 앉힌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딸기 스무디를 시켰다. 주문을 끝낸 후 세나 이즈미 쪽을 보자 여즉 울음이 남았는지 눈을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우미 마코토는 픽업대 앞에서 음료를 받은 후에야 세나 이즈미에게로 갔다.
세나 이즈미는 작게 흐끅대며 유우키 마코토의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우키 마코토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삼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제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빤히 보던 세나 이즈미는 유우키 마코토를 보더니 그의 손에 들린 딸기 스무디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 그거 줘.”
“이거 딸기 스무디인데요?”
당신이 이 시간에 절대 안 먹을 것 같은 칼로리 높은 음료라구요. 하는 말이 함축된 말이었다. 이런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나 이즈미는 재차 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상관없어.”
이렇게 남 생각 안 하는건 하나도 바뀌지 않았네. 새삼스럽게 제가 알던 세나 이즈미가 보여 작게 웃고는 결국 그 손에 딸기 스무디를 쥐어줬다. 세나 이즈미는 스무디를 받아들자마자 전투적으로 꿀꺽대더니 3분에 1쯤 먹고는 얼굴을 구겼다.
“달아. 엄청 달아. 이 시간에 이런 합성착향료덩어리를 왜 시켰어? 유우군 건강 신경 안 써? 아이돌로써 자각은 있는거?”
역시 이즈미씨는 이즈미씨다. 남의 것을 빼앗아먹고는 저렇게 불평불만을 하다니. 유우키 마코토는 억울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유우키 마코토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세나 이즈미는 킬킬 웃고는 딸기 스무디를 제 눈에다 가져다 대며 징징거렸다. 이렇게 울고 이런걸 먹다니 내일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완전 짜증나-. 그런 세나 이즈미를 보며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적거리던 유우키 마코토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울었어요?”
그 말에 세나 이즈미가 딸기 스무디를 내려놓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유우키 마코토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 정도는 들을 권리 들을 권리 있다고 생각해요. 유우키 마코토는 입꼬리를 올려 한껏 무해한 표정을 만들었다. 그에 세나 이즈미는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역시 이 형아가 같이 있어야 했는데, 얄미워졌잖아. 유우군.
“애인이랑 싸웠어.”
“...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순간부터 세나 이즈미는 유우키 마코토에게 사적인 연락 횟수를 줄였다. 기껏해야 기념일 인사, 생일 축하, 데뷔 몇주년 축하, 시상 축하. 뭐 이런 것들이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보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만난적은 없고 일같은 이유로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이러기도 쉽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세나 이즈미와 유우키 마코토의 관계는 세나 이즈미쪽에서 놓아버리면 끝나는 관계였던 것이다. 뭐 어찌됐든, 그 공백 사이에서 세나 이즈미는 애인을 만들었나보다.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그 세나 이즈미가 얼굴 팔리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울정도로 사랑하는 애인. 유우키 마코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이 씁쓰레했다. 이래서 스무디를 시킨건데.
이런 대화의 흐름이라면 왜 싸웠냐고 묻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유우키 마코토 그저 빨때를 어금니로 씹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 세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나보고 무거워졌대.”
“네에...”
방금 전까지는 싸운 이유를 물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말에 고작 그런 이유로 운거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세나 이즈미가 몸무게와 체형에 많이 신경쓰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들었으면 몸무게 관리를 했으면 했지 싸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섹스 도중에.”
“아.”
유우키 마코토의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 요즘 안일해졌었구나 싶어서. 한 이주일정도. 그 말을 끝으로 세나 이즈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무언가를 참아내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스무디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던게 단번에 이해가 갔다. 유우키 마코토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그 녀석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매일 밥도 만들어줬다고!”
감정이 격해졌는지 세나 이즈미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방금의 말로 유우키 마코토는 세나 이즈미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추측할 수 있었다. 애인이랑 동거중인가? 그나저나 이 사람 진짜 지금 눈에 뵈는게 없구나. 세나 이즈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 뭐. 그렇게 살다가, 내가 응급실에 실려갔어. 저혈당으로.”
“이즈미씨...”
“알아, 그건 내가 잘못 한거야. 안다고.”
유우군에게 건강 어쩌구 훈수할 처지가 아니긴 했네. 세나 이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비죽 웃었다. 자세히 보니 무리하게 살을 뺀 흔적이 남아있었다. 푹 꺼진 광대밑과 가느다란 손목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유우키 마코토는 도드라진 뼈를 보며 제 엄지와 검지로 잡아도 다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걔는 왜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살을 빼냐고 했고, 나는 누구 때문에 이 짓을 했냐고 했고... 그러다 싸운거지.”
세나 이즈미는 그 말을 끝으로 테이블에 이마를 문댔다. 알아. 내가 잘못한 거. 걔도 걱정해서 화낸거 안다고. 테이블 밑에서 꿍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슬슬 물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 애인도 무신경한 듯싶지만 어지간히 세나 이즈미를 걱정했나보다. 그래도 말이지, 나같으면-. 유우키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나 같으면? 내가 뭘 어쩌게? 유우키 마코토는 맞은편의 세나 이즈미와 똑같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진동했다. 세나 이즈미가 놀라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유우키 마코토는 그것을 신경쓸 수 없었다. 세나 이즈미의 애인에 저를 대입했다. 왜? 머리를 몇 번 더 테이블에 박아대니 세나 이즈미가 손을 뻗어 그것을 말렸다.
“유우군! 괜찮아?”
갑자기 왜 그러냐며 세나 이즈미가 말했다.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세나 이즈미는 옆자리로 와선 이마를 살폈다. 붉어진 이마에 손을 대더니 혹이 남지는 않겠다며 안도한 듯 작게 웃었다. 발개진 눈이 접혀지고 잔뜩 물어뜯은 입술에 미소가 얹어졌다. 유우키 마코토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전의 세나 이즈미에 비하면 하나도 예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우키 마코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눈만 끔뻑이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목이 막혔다. 씁쓸했던 입 안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곧 태풍이 올 바다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 상념을 깨게 한 것은 세나 이즈미의 스마트폰 벨소리였다.
“아.”
발신인을 확인한 세나 이즈미가 짧게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유우키 마코토의 눈에 들어왔다.
“애인이에요?”
“...응.”
세나 이즈미는 차마 받지는 못하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몇 번을 더 울리던 벨소리가 끊어졌다. 세나 이즈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받지 그랬어요?”
“받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그 일을 네 탓이라고 했을 때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세나 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또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세나 이즈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금 어두워졌다.
“무슨 고민을 해요. 이즈미씨가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사과하면 되는거지.”
“나한테 정 떨어졌다고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헤어지는거죠.”
“유~우~군~?”
노려봐봤자 그런 얼굴로는 하나도 위협거리가 되지 않았다. 벨소리가 뚝 끊겼다. 세나 이즈미는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엎어놨다. 보지 않겠다는 듯 굴지만 모든 신경을 스마트폰에 쏟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계속 지낼건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다음에 오면 받아요.”
유우키 마코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벨소리가 울렸다. 세나 이즈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다짜고자 어딘지를 물었다. 세나 이즈미는 어물어물 카페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그쪽으로 간다는 상대방의 말에 당황하다 끊긴 전화를 바라봤다. 세나 이즈미가 눈을 서너 번 정도 깜빡였을 때 그의 입이 움직였다.
“...거울.”
“이즈미씨?”
“나 거울! 내 얼굴 괜찮아? 아 젠장. 눈이 부었을텐데. 입술 상태도 완전 별로란 말이야. 아니 지금은 눈이 문제니까... 찬걸 대고 있어야하나?”
그 모습에 유우키 마코토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왜 웃는거야 유우군! 세나 이즈미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세나 이즈미는 웃을 시간이 있으면 거울이나 달라며 유우키 마코토의 소매를 잡고 흔들어댔다. 고등학생 시절 세나 이즈미는 제 앞에서 항상 저런 모습을 보였었다. 차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괜찮아요. 예쁘니까.”
유우키 마코토의 말에 세나 이즈미가 손을 멈췄다. 그러면 다행이지만... 아니 거짓말하는거지? 지금 이 모습이 예쁠 리가 없잖아! 얌전해지는가 싶던 세나 이즈미가 도끼눈을 떴다. 아 지금 표정은 못생겼어요. 유우키 마코토가 그렇게 말하자 얼굴 표정을 풀었다.
“그 사람 정말 좋아하나보네요.”
“응.”
고갤 끄덕이는 세나 이즈미의 얼굴이 눈가와 마찬가지로 발갰다. 이쪽 봐요. 유우키 마코토는 손을 뻗어 세나 이즈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그 사람 만나면 미안한다고 말해요.”
“...알았어.”
다 됐어요. 유우키 마코토가 적당히 머리 정리를 끝내곤 마지막으로 눈가를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유우군 주제에 나한테 연애로 조언한거야 지금?”
세나 이즈미가 턱을 슬쩍 들고는 흥, 하는 소리를 냈다. 오만하고 콧대 높은 회색고양이. 잔뜩 운 얼굴로는 그 위엄이 안 선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유우키 마코토는 웃는 것으로 그 말을 참았다. 전화 벨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나가봐요. 유우키 마코토가 세나 이즈미를 일으키고 등을 슬쩍 밀었다. 세나 이즈미는 유우키 마코토를 돌아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오늘 고마웠어. 유우군.”
“알았으니까 빨리 가요.”
세나 이즈미는 벨소리가 울리는 스마트폰을 생명줄마냥 꼭 쥐고는 발소리를 탁탁 내며 밖으로 나갔다. 유우키 마코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세나 이즈미가 남긴 스무디를 빤히 바라봤다. 녹아서 불투명한 핑크색 물이 된 스무디가 저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녹아버린 스무디는 맛이 없을 것이다.
***
유우키 마코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회색머리와 익숙하지 않은 오렌지색 머리가 보였다. 애인이라는게 그 사람이었구나. 세나 이즈미가 게이였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놀랍지 않았다. 그냥 저 사람은 여전히 이즈미씨의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페와 바깥을 구분짓는 유리 너머로 세나 이즈미의 얼굴이 보였다. 미안해. 입모양이 명확하게 보였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유우키 마코토는 속으로 빈정거리고는 스마트폰을 열어 트릭스타의 단톡방에 한 마디를 보냈다.
-나 실연당한 것 같아.
순식간에 알람이 띠롱띠롱 다급하게 울렸다.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언제부터? 괜찮아? 당한 것 같아는 뭐야?이런 질문들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무어라고 답하기도 뭐해서 그걸 보고 있자니 이제는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아케호시 스바루.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웃키~! 하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유우키 마코토는 급하게 통화 음량을 줄였다. 술! 술 마시자! 뜬금없는 그 말에 픽 웃으며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보니 세나 이즈미와 츠키나가 레오가 진득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켁. 저 사람 오늘 정말 막나가는구나. 수화기에서는 자기들이 술을 사올테니 숙소로 오기만 하라는 아케호시 스바루의 목소리와 그런 아케호시 스바루를 어떻게든 말려보려는 이사라 마오의 목소리, 그리고 전화기를 뺐었는지 괜찮냐고 묻는 히다카 호쿠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유우키 마코토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음료를 버리는 곳에 남은 딸기 스무디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쏟았다.
“응, 이제 갈게.”
제목에 커플링 표시를 마코이즈로 해야하나 레오이즈로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갔습니다...
레오랑 이즈미랑 ㄱㅅㅇ 하다가 저 꼴 난거랍니다. 레오 중심으로도 써보고 싶어요
이즈미가 마코토에게 연락을 줄인 이유는 주변에서 사귀는 사람 있는데 다른 사람 그렇게 챙기는건 좀 아니지 않아? + 레오가 대놓고 질투하는 모습 보여서 였는데 넣을 구석이 없었습니다...
이즈미는 사랑을 할 때는 수치를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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